[경상남도] '맛’과 ‘멋’이 살아 숨 쉬는 통영의 느린 길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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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패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볔녘의 걸엔 쾅쾅 붕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백석作 '통영2' 中 -
통영의 작은 어촌 ‘연명마을 이야기’
소립자 스프레이 비안개가 마을 전반에 산재해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하늘은 푸르고 햇볕은 쨍쨍하다. 낮은 구릉을 따라 고만고만한 집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곳, 사이사이 좁은 골목들이 차곡이 포개지면 이 골목을 지나 저 골목 끝에 또 다른 시작이 자리한다. 그리고 그 시작의 끝에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그곳의 바다, 기척에 걸려있는 태양은 그 빛을 고스란히 표면으로 내던지고 생동하는 바다의 기운은 그것을 잔잔히 부셔대니 그걸 바라보는 누군가의 눈이 실로 부셔 참을 수가 없다. 마을은 조용히 바다를 품고 소립자 스프레이 비안개 속으로 바다는 가만히 짠내음을 감춘다.
연명의 밤은 고요하니 유일하게 불 밝힌 그곳에는 아까부터 도란도란 여행자들의 수다가 삼매경이다. 저마다 마련한 거리들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우리니 벌겋게 오르는 취기에 각자의 벽은 자연히 허물어진다. 1인당 소주 1병, 그 이상은 과하단 걸 알기에 여행객들은 군말 없이 규칙을 따른다. 적당히 하고 잠자리에 든다. 불이 꺼지고 완연한 어둠속에 누군가의 코골이가 단잠을 방해한다. 주머니 사정이 열악한 학생들이나 홀로 여행자들이 주로 묵는 이곳 [통영게스트하우스] 좁은 방에 2층 침대 3개가 더욱 비좁게 놓여있다. 기어이 청하지 못한 잠, 마당의 평상에 누워 바라본 하늘을 유난히 까맣고 촘촘히 빛났다. 다시 맞은 연명은 아직 채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이다. 새벽의 활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서호시장은 지척의 중앙시장과 더불어 통영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이다. 서호가 통영의 새벽을 연다면 통영의 오후를 닫는 것은 중앙시장, 통영의 심장 강구안을 끼고 연결된 두 시장을 산책 삼이 쉬이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맛’과 ‘멋’이 공존하는 통영 통영의 시장에는 먹거리들이 넘쳐난다. 도다리, 바다메기, 바닷장어, 볼락, 털게 등 이름만큼 생소한 생선들이 도처에 파닥인다. 통영의 특산품 굴과 멸치도 빼놓을 수 없다. 모두 다 지척의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이다. 우짜면, 빼떼기죽, 졸복국, 장어국밥, 시락국, 도다리쑥국, 메기탕, 멸치회, 나물비비밥, 꿀빵등 이름만 들어도 그 맛이 궁금해지는 별미들 또한 놓쳐서는 안 될 통영의 맛이다. 통영의 옛 지명 ‘충무’를 떠올리게 하는 충무김밥은 1960년대 한려수도 뱃길의 중심에 있던 구 충무시 강구안일대의 배위를 무대로 아주머니들이 김밥을 팔면서 유래되었다. 먼 뱃길에 보관에 용이하도록 밥과 반찬을 따로 한 충무김밥은 원조라 칭해지는 ‘한일김밥’과 대를 이어 그 맛을 유지하고 있는 ‘뚱보할매김밥’이 관광객들에게, 여객터미널 앞에 위치한 ‘풍화김밥’이 현지인들에게 유명하다. 보기엔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충무김밥이지만 또 먹다보면 그 오묘한 차이가 느껴지니 쫀득한 갑오징어의 식감에 각자의 비법을 담은 양념의 고소함이 더해지면 알싸한 석박지와 함께하는 충무김밥은 진정 통영의 별미이다. 서호시장 앞 여객터미널, 소매물도를 비롯한 통영 인근 섬들을 향하는 관광객들의 두 손에 저마다 충무김밥 하나씩이 꼭 들려 있는 까닭이다. 인근 섬 여행을 마치고 찾아간 여객터미널 앞 분소식당은 졸복국으로 유명하다. 졸복(복어의 일종)과 콩나물을 함께 끓인 맑은탕(지리)으로 탕 하나에 손가락만한 졸복이 대여섯 개가 들어있는데 졸복을 따로 건져내 초장에 찍어먹으면 술안주로도 좋다. 통영 이외에서는 맛보기 힘든 음식이므로 먹어두는 것이 좋다. 하지만 요즘 들어 통영에도 졸복이 점차 귀해져 대부분 ‘복섬’이라는 복어를 가지고 졸복탕이라 불리며 팔리는 실정이다. 멍게비빔밥과 해물뚝배기도 통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별미인데 통영의 대부분의 맛집이 평준화 된 훌륭한 맛을 보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항남뚝배기가 가장 유명하다. 바닷가에 왔으니 회도 한 접시 먹어야겠다. 통영시내 대부분의 횟집에서 믿을 만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그래도 통영에서 회를 가장 싸게,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당연히 직접 발로 뛰는 것이다. 중앙시장 안의 활어거리에서 직접 횟감을 골라 인근 초당집에 가져가 먹을 수가 있다. 인당 3,000원의 서비스 비용을 받으며 추가시 2~3,000원의 비용이 플러스 된다. 4~5,000원에 매운탕을 끓여준다. 주변에 얼음이 담긴 아이스박스 2~3천원에 구매할 수 있으니 포장해서 야경이 아름다운 통영대교나 석양이 아름다운 달아공원에서 즐겨도 좋겠다. 혹은 숙소에 가져가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나눠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찌집은 통영만의 특별한 술 문화다. 이는 해산물을 안주로 하는 선술집인데 식당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한 테이블(4인)당 3만원인데 기본 소주 2~3병 혹은 맥주 5병에 해산물 안주 10~20가지가 푸짐하게 차려진다. 안주로는 메기탕, 전복죽, 전갱이 구이, 모듬회, 산낚지, 메기알, 멍게, 해삼, 개불, 대하, 가재, 꽁치, 갈치구이 등이 나오고 국으로는 쑥국, 메기국, 조개국, 장어국 등이 계절에 맞게 나온다. 술을 추가로 주문할 때마다(소주 한 병에 만원, 맥주는 한 병에 육천 원) 색다른 안주가 제공되는데 뿔소라, 낙지, 생게탕, 털게, 피조개, 문어 찜 등 통영 해산물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는 다양한 음식들이 나온다. 식당마다 다소 차이는 존재하며 추천식당으로 여객선터미널근처의 명촌식당을 들 수 있다. 그곳을 나와 화가 <전혁림 미술관>을 향한다. 슬슬 걸어가는 그 길에서 만난 작고 소박한 동네 풍경, 단층의 집들은 소박한 멋을 풍긴다. 길을 따라 걸으면 그 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은 또 다른 선물이며 저 멀리 알록달록 깔끔한 건물이 눈에 띈다. 전혁림, 그의 예술생을 기념하고 보존코자 건립한 기념관이며 그곳에서 일평생 그림만을 그려왔던 노화백의 흔적들을 만날 수가 있다. 노화백의 미완의 작품이라는 통영앞바다. 그의 회고전을 돌아보며 노화백의 그림에 대한 열정, 고향마을 통영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가 있다.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1429-9번지에 위치한 <박경리 기념관>은 ‘토지’의 작가 박경리를 기념하고 선생의 문학에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한 고향 통영을 소개함으로서 선생의 문학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건립되었다고 한다. 주변 공원과 조화를 이루는 적갈색 벽돌로 지어졌으며 커다란 통유리너머 통영의 바다를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그녀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이 통영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몰락을 이야기 한다.
섬과 바다가 만드는 아름다운 항구도시 통영, 좁은 골목골목 깊숙한 구석까지 그곳을 사는 사람들의 짠내나는 인생이 깃들어져 있다. 시장의 번잡함을 지나 만나는 해질녘의 강구안은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통영대교에서 바라본 야경은 눈부시게 화려하다. 함께 나누는 맛은 그보다 더한 멋이 되어 돌아오고 그곳을 살다 간 옛 문화 예술인들의 숨결은 여전히 통영의 거리 곳곳에 살아있다.
경상남도 통영에 가을이 왔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경상남도 남해 통영의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어촌 연명마을, 여름의 끝자락에 다시 찾은 그곳은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 왔다. 스치는 맨살에 작은 소름이 돋는다. 팔이 긴 얇은 옷을 서둘러 덧입는다. 황토색 돌담을 지나 보면 제법 너른 공터에 거대한 가마솥 단지가 까맣게 그을린 아궁이로 우직이 걸쳐 있다. 좀 전까지 분명히 불씨가 남아있던 듯 만져보면 나직이 온기가 전해진다. 한 쪽 길가로 펼쳐진 자리에는 정체모를 나물들이 널찍이 흩어져 있고 처마 끝에 매달린 마늘더미는 그 무게가 참으로 버거워 보인다. 길가 전봇대 아래 두발 달린 자전거가 비스듬히 기대 서있다. 그러면 그 주변으로 싸구려 플라스틱 화분들이 즐비한데 그것의 몸체엔 통영의 옛 지명 ‘충무’가 단단히 아로새겨 있다.
바람 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 시인 백석이 묘사한 통영의 풍경이 흡사 이곳을 두고 본 것은 아닌 건지 그 길을 걷는 걸음에서 시인의 시어가 곳곳에 차인다. 어슴푸레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바다는 금세 검푸른 빛깔을 넘실거리고 그곳에 정박한 어선들은 내일의 출항을 기다리며 얌전히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 멀리 수면 위로 둥둥 떠 있는 그것은 굴이며 전복을 키우는 양식장이라고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할머니 한 분이 알려주신다. 돌아보면 하나 둘 동네 어르신들이 속속들이 모여든다. 어촌의 짠 내음에 익숙해 질 때 까지 그곳 부둣가에 걸터앉아 그분들과 참 많은 이야길 나누었지. 호기심도 많고 거리낌도 없었던 동네 어르신들과의 수다는 고요한 적막에 휩싸인 이 마을에서 그곳만이 유일하게 허락하는 그림 같은 풍경이다.
‘멋’은 ‘맛’에서 출발하니 금강산도 식후경, 통영의 멋을 즐기러 서호시장의 맛집 ‘원조시락국’집에 들어간다. 시락국은 무청 말린 시래기를 끓인 ‘시래깃국’의 경상도 사투리로 멸치가 아닌 장어 머리를 고아 진한 국물을 내는 이집 시락국이 단연 최고라 한다. 시락국 한 대접을 앞에 두고 ‘꿀꺽’ 저절로 침이 삼켜진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주인은 국양념으로 부추, 김, 산초, 청양고추를 넣으라고 알려주신다. 뿌연 국물은 진하고 구수하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유치환作 '그리움'-
통영 문화 예술 산책
통영의 바다는 시를 품는다. 한 폭의 수채화를 머금고 찰싹거리는 파도가 귓가를 맴돈다. 섬과 바다 육지가 어루러져 장관을 이루는 통영은 예부터 미항 혹은 예항의 도시로 유명했다. 미륵산에서 내려다 본 한려수도를 포함한 통영 8굥, '찾아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우도와 등대섬으로 유명한 소매물도를 비롯한 인근의 크고 작은 섬들의 아름다움은 통영의 그런 명성을 더욱 견고히 하며 그것은 통영이란 곳이 청마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김용익을 비롯해 작곡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 등 굵직한 문화 예술인들을 배철하게끔 한 원동력일 것이다.
통영에 가면 그들의 삶과 예술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청마 문학관, 윤이상 기념관, 전혁림 미술관, 박경리 기념관은 물론 시내 곳곳마다 문인들의 예술과 생이 정류장이며 벽 등에 전시되어 있다. 길을 따라 여객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윤이상 거리>와 <윤이상 기념관>을 찾는다. "나는 귀국하면 내가 그리워하던 고국의 흙을 만지게 됩니다. 그때 흙에 입을 대고 나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충성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곳엔 시대가 품지 못한 한 천재 작곡가의 삶이 있다. 그곳을 나서는 발걸음에 쓰라린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