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기/review'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3.01.11 | 아니쉬 카푸어의
  2. 2012.10.05 | 모차르트 돈 조반니
  3. 2012.10.04 | 히스테리아, 피나
  4. 2012.10.01 | 그을린 사랑

아니쉬 카푸어의

느끼기/review | 2013. 1. 11. 11:39
Posted by 그리고 가을
한남동 리움에서는 동아시아 최초로 아니쉬 카푸어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무감동의 세련됨을 모토로 삼는 현대미술에서 카푸어는 숭고를 통한 절대적 감동을 지켜온 고독한 작가다.

 

거대한 설치 작품 <동굴> 앞에 선 아니쉬 카푸어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작품과 조우했다. 가을 냄새 자욱한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 다녀왔다. 동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개인전, 카푸어의 작품 7점을 구입했다는 후문이 더해져 미술관은 하나의 성채(城砦) 같았다. 리움은 관람객을 고독하게 만든다. 물질로 세워진 공간에 들어선 순간, 관객은 주눅이 든다. 리움은 존재하되 부재(不在)하는 공간이다. 버겁기 때문이다. 관객은 고독의 위험을 감수하고, 리움은 작품 앞에 선 자를 제압하려 든다. 그 둘 사이의 공통점은 별다른 말 없음. 해서 둘 다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좋은 공간은 깊다. 깊이 있음은 ‘좋다’의 동의어다. 우리는 늘 깊은 공간을 원한다. 세상의 번뇌를 떨칠 수 없기에 미술관에 깊이를 요구한다. 세상과 거리를 둔 공간을 꿈꾼다. 대신 전시장을 나서자마자 세상을 와락 껴안는다. 이 비겁함이 결과적으로 미술관을 생존케 한다. 세상과 겉도는 미술관이 깊고 내밀한 전시를 만들어낸다. 세상이 경외하는 미술관의 시작은 세상과의 구분 짓기에서 비롯된다. 전시를 연다는 것은 세상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다. 미술관이 세상의 유행에 민감해지는 순간, 관객 수를 헤아리는 순간 전시는 파국을 맞는다. 다른 공간을 기웃거리던 작가들이 미술관으로 되돌아가는 이유다. 세상과의 교감을 포기하고 미술관에 어울리는 어법을 찾는 까닭이다. 작가는 침묵이 어울리는 보기 드문 존재다. 모리스 블랑쇼가 옳았다. 어조(語調)는 작가의 목소리가 아니라 작가가 말에 부과하는 침묵의 내밀성이다. 침묵을 자기것으로 만드는 순간, 세상은 그를 훌륭한 작가로 기억한다. 자기를 지워야 미술관에 입성할 수 있다. 아무것도 남겨진 것이 없는 곳에서 침묵하는 작가에게 미술관은 목소리를 선사한다. 미술관은 침묵하는 작가를 통해 하나의 이미지가 되고, 상징이 된다. 미술관이라는 ‘그 부조리의 힘’. 미술관은 예술가의 침묵으로 권력을 얻는다. 아름다움과 숭고에 관한 침묵, 아니쉬 카푸어로 인해 ‘일반인’의 출입은 꺼리는 듯한 삼성미술관 리움은 관객 수를 헤아리게 되었다.

아니쉬 카푸어는 인도와 영국의 정체성을 적절하게 섞어 구사한다. 1954년에 태어났으니 예순을 앞둔 나이. 1990년대에 이미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 작가, 터너 상 수상 등 지복(至福)을 누렸다. 가루 안료, 비어 있는(void) 조각, 건축 끌어들이기, 회화와 조각의 공존 방식으로 물질과 비물질, 존재와 부재, 안과 밖, 비움과 채움, 몸과 정신, 동양과 서양 등 이분법적 경계를 오가는 작가로 미술사에 등재를 남겨둔 상태다. 구상과 추상, 남성성과 여성성, 서구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의 공존을 좋은 작품의 미덕으로 여기는 당대 미학의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작가이기에 충분히 자격이 있다. 달리 말하면, 절반을 이야기함으로써 나머지 절반을 획득하는 영리한 작가인 셈이다. 무엇보다 그의 작업은 숭고하다!
1. <나의 붉은 모국, 2003> 2. <현기증, 2012> 3. <나의 몸 너의 몸, 1999> 4. <붉은색의 은밀한 부분을 반영하기, 1981> 5. <노랑, 1999>
숭고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숭고함이란 ‘공포, 때로는 거의 절망이 뒤섞인 즐거움’(존 데니스)이다. 오래 전 숭고의 기원을 탐구한 에드먼드 버크는 그 대상이 진부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코텐 스틸(Cor Ten Steel)로 이루어진 <동굴>의 불안한 위용, 거대한 해머가 붉은 왁스 덩어리를 무심한 듯 밀고 지나가는 <나의 붉은 모국>, 관객을 흡입할 듯 벽면에 붙어 있는 <나의 몸 너의 몸> 등 카푸어의 ‘고상한 폐허(Noble Ruin)’는 진부하지 않다. 물론 새롭다는 것만으로는 숭고함에 이르지 못한다. 세상에 안착하는 예술은 언제나 새로움과 비범함, 아름다움, 거대함을 담고 있다. 숭고함은 이러한 특질들이 모여 우리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때 만들어진다. 거대한 물리적 숭고 속에 감동을 지향하는 심리적 숭고함을 감춰둔다면 금상첨화다. 무감동의 세련됨을 모토로 삼는 현대미술에서 카푸어는 숭고를 통한 절대적 감동을 지켜온 고독한 작가다. 그 외로움이 지금의 그를 가능케 했다. 감동은 철 지난 유행가가 아니라는 것, 지금은 예술 형식에 앞서 예술 개념과 정서를 다시 사유해야 하는 시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으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내도 좋다.

그리고, 카푸어의 작품은 깊다. 고고한 리움의 벽면에 뚫린 그의 구멍(void)은 부분이 전체를 능가하는 현실을 역설한다. 카푸어의 작품은 어지럽다. 거울 같은 스테인리스 스틸 표면에 비치는 세상은 뒤집히거나 분열된 모습으로 현기증(vertigo)을 일으킨다. 카푸어의 거울, 아니 스틸 표면은 대상과 풍경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그 속의 ‘상처’를 끄집어낸다. 그의 작품 앞에 선다는 건 정신보다 물질을 우선시하는 후기자본주의에 상처 입은 ‘나’라는 개별적 주체의 트라우마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의 실현이다. 마음에 바람이 부는 구멍 난 존재로서의 나를 드러내는 카푸어의 구멍 혹은 거울 같은 스틸 앞에서 우리는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세상이 주목하는 작가는 항상 주체 내부에 존재하는 미지의 심연을 자극한다. 아문 줄 알았던 상처를 건드려 일부러 곪게 만들고 피멍을 남긴다. 참혹했던 자리는 아물기 마련이고 결국 새살이 돋는다는 세상의 법칙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카푸어의 작업이 흔해빠진 거대 설치 작업들과 구별되는 까닭은 우리로 하여금 내 안의 상처와 대면시키기 때문이다. 겁먹을 필요는 없다. 구멍 난 상처를 응시하고, 후벼 파고, 짓이길 때 상처는 겁을 먹고 슬금슬금 도망친다. 해서 카푸어의 거울은 나르시시즘으로서의 과잉이 아닌 상처받은 자로서의 결핍을 담는 올록볼록한 구멍이다. 왜곡되고 분열된 내 모습을 체험케 함으로써 ‘자아’를 발견하게 하는 마음속 통로이다. 세상을 향한 존재감은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인식할 때 생겨난다. 때론 우리는 자신을 학대할 필요가 있다.

카푸어의 현기증 나는 구멍이 더 깊이 들어갈지, 아니면 반대로 구멍을 메우며 되돌아 나올지는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건 그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는 것이 현대미술의 다음 단계를 예감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전설이 된다는 것은 특별함을 넘어 보편적인 무엇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착시와 환영으로 이루어진 카푸어의 특별한 구멍과 거울 같은 오브제는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보편적인 미술의 경지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이 절정의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격동의 체험을 지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작가도 있다. 미술사는 이렇게 반복되어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렀다. 추락하지 않기 위해 혹은 비상하기 위해 미술가는 자신을 돌아보고 학대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 고독의 단계를 넘어 ‘몰입’에 이른 작가들만이 역사가 된다. 욕망의 물질과 외형으로 욕망의 거품을 제거하는 정신을 담는 숭고의 메커니즘. 적어도 지금까지 아니쉬 카푸어의 생성물은 고독하지 않다. 그는 숭고함을 향한 몰입의 공식을 아는 작가다. 물론 최종적 승인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 더 자세한 내용은 <VOGUE> 2012년 12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크레딧
에디터 피처에디터 / 이미혜(LEE, MEE HYE )
기타 PHOTO / courtesy of LEEUM,글/ 윤동희 (북노마드 대표, 미술 무크지 발행인 겸 편집인)
출처 Vogue website
카피라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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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돈 조반니

느끼기/review | 2012. 10. 5. 17:58
Posted by 그리고 가을

사회는 바람둥이에게 적대적입니다. 우선은 한 여자 또는 한 남자가 다수의 이성을 사로잡는다는 ‘특권’에 대해 배가 아프기 때문이고, 바람둥이를 용인할 경우 일부일처제가 흔들리면서 유산상속에 혼선이 빚어지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혁명적인 변화를 원하기보다는 기존 사회의 틀을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사회규범을 침해하는 개인이 나타나면 힘을 모아 응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차르트 오페라의 주인공 ‘돈 조반니 Don Giovanni’는 바로 그 ‘벌 받는 개인’의 좋은 예가 됩니다.

 

세 시간이 넘는 긴 공연 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긴장과 경탄을 늦출 수 없는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 예술의 절정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을 2년 앞둔 1787년에 프라하에서 초연된 이 오페라에는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재기 넘치는 아리아들이 가득하거든요. 서곡부터 아주 특이합니다. 비극적이고 장중한 음악으로 시작하지만 곧 유쾌하고 활기가 넘치는 멜로디로 넘어갑니다.

 

no아티스트/연주

  1. 1카탈로그의 노래 Madamina, il catalogo e questo - 요세 반담[베이스 바리톤]
  2. 2거기서 그대 손을 잡고 La ci darem la mano - 루제로 라이몬디[베이스], 테레사 베르간사[메조 소프라노]
  3. 3내 연인을 위로해 주세요 Il mio tesoro intanto – 케네스 리겔[테너]
  4. 4저 악당은 나를 배신했지만 Mi tradi quell'alma ingrata – 키리 테 카나와[소프라노]

1분감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2,065명을 유혹한 세비야의 바람둥이


그럼 이 돈 조반니는 대체 누구일까요? ‘돈 Don’은 귀족에게 붙이는 칭호, ‘조반니 Giovanni’는 이탈리아에서 흔한 남자 이름인데, 영어로는 존, 프랑스어로는 쥐앙, 독일어로는 요한 또는 요하네스, 스페인어로는 후안입니다. 바람둥이의 대명사 ‘돈 후안’이 바로 이 남자죠. 영지(領地)를 소유한 봉건귀족이라는 사회적 지위와 매력있는 외모를 무기로 무수한 여자들을 유혹하고, 목적을 달성한 뒤에는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 재빨리 도망가는 남자. 정치 이데올로기나 사회적 성공, 재산 축적, 명예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순간의 쾌락에 모든 것을 거는 남자가 이 오페라의 주인공입니다. [피가로의 결혼]의 천재적인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는 에스파냐 극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가 1620년경에 쓴 [세비야의 바람둥이와 석상(石像) 손님]을 토대로 [돈 조반니]의 대본을 썼습니다.


1막에서 돈 조반니는 기사장(騎士長)의 딸인 돈나 안나에게 반해 그녀의 약혼자로 위장하고 밤중에 몰래 안나의 방에 침입합니다. 그를 약혼자 돈 오타비오로 착각했던 안나는 곧 낯선 남자임을 알아차려 완강하게 저항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고 쫓겨나오던 돈 조반니는 운 나쁘게 기사장과 맞닥뜨리자 결투 끝에 그를 죽이고 도망칩니다.

 

돈 조반니에게 버림받은 돈나 엘비라(왼쪽)와 돈 조반니.

 

 

두 번째 여주인공 돈나 엘비라는 돈 조반니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헌신하다가 하루 아침에 버림받은 여자입니다. 결혼식까지 올리고 돈 조반니가 홀연히 사라져버리자 엘비라는 “그 인간이 내 품 안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심장을 꺼내 갈갈이 찢어놓겠다”고 이를 갈며 돈 조반니를 찾으러 다니지만, 사실은 다시 만나 사랑을 되찾고 싶은 미련으로 간절합니다.


하인 레포렐로는 ‘카탈로그의 노래’로 엘비라를 약올리며 자기 주인의 실체를 폭로합니다. 이제까지 돈 조반니가 농락한 여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수첩을 병풍처럼 펼쳐 보이며, “이탈리아 여자가 640명, 독일에선 231명, 프랑스 여자가 100명, 터키 여자는 91명, 홈그라운드인 스페인에서는 천 명 하고도 셋. 온갖 신분, 갖가지 생김새, 별별 연령층의 여자가 다 있죠. 겨울에는 살집 좋은 여자, 여름에는 마른 여자를 고르고, 키 큰 여자보곤 기품 있다고 칭찬, 작은 여자한테는 사랑스럽다고 아첨한답니다. 명단 늘이는 재미에 나이든 여자도 마다 않지만, 주인님이 진짜 좋아하는 건 역시 경험 없는 젊은 처녀죠...” 라고 노래합니다. 레포렐로는 모든 것을 소유한 귀족 주인에 대해 계급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면서도 주인과 같은 삶을 열망하는 이중성을 지닌 인물입니다.


한편 하인에게 엘비라를 떠넘기고 도망친 돈 조반니는 지나가다가 마을 결혼 잔치에서 새 신부를 보고 한눈에 반합니다. 시골처녀지만 대담하고 애교가 넘치는 체를리나입니다. 신랑 마제토를 따돌리고 돈 조반니는 그녀를 유혹해 정사를 치를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려 합니다. 돈 조반니의 유혹에 체를리나는 망설이는 척하며 아리송한 대답으로 줄다리기를 시도합니다. 남자의 진심을 떠보는 영악한 처녀죠. 그러나 역시 희대의 바람둥이는 경험 없는 처녀보다 한 수 위입니다. “내가 그대의 운명을 바꿔주지.” 돈 조반니의 이 한 마디에 체를리나는 즐겁게 무너집니다. 그러나 이 순간에 나타난 엘비라의 폭로로 돈 조반니의 실상을 알고 체를리나는 신랑 마제토에게 돌아갑니다.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주인공의 음악

이제 체를리나는 남편을 붙잡기 위해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아양을 떨며, 빙산이라도 녹일 듯한 아리아 ‘날 때려줘요, 마제토’를 노래합니다. 신혼 첫날 딴 남자랑 도망간 신부 때문에 깡통로봇 꼴이 된 마제토지만 어느새 맘이 풀려 체를리나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전혀 죄책감이 없는 돈 조반니는 엘비라의 하녀를 유혹하려고 레포렐로와 옷을 바꿔 입고 감미로운 ‘세레나데’를 부르기도 하고, 자신이 결투로 죽인 기사장의 무덤 앞에서 장난으로 기사장을 저녁식사에 초대하기도 합니다.

 

돈 조반니에게 당한 안나, 오타비오, 엘비라, 체를리나, 마제토는 다 함께 보복을 하려고 기회를 노리지만, 기사장의 석상, 그러니까 ‘기사장 귀신’이 한발 앞서 복수를 하러 옵니다. 기분 좋은 저녁식사 자리에 말을 타고 들어온 석상은 돈 조반니에게 거짓과 사기로 점철된 바람둥이의 삶을 회개하라고 명하지만, 돈 조반니는 끝까지 회개를 거부하고 당당하게 버티다가 결국 지옥불로 떨어집니다.


돈 조반니는 음악적으로 볼 때도 대단히 특이한 주인공입니다. 중년의 호색한이 아닌 젊은 바람둥이(원작의 나이는 27세)지만 모차르트는 그를 테너가 아닌 바리톤 배역으로 설정했고, 주역인데도 제대로 된 아리아를 작곡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통해 이 주인공을 느긋한 유혹자가 아닌 신경질적이고 조급증 가득한 ‘환자’로 표현했습니다. 돈 조반니가 부르는 ‘포도주의 노래’나 ‘세레나데’는 쫓기는 듯하거나 너무 빨리 끝나버리며, 끝까지 그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부여받지 못합니다. 대신, 돈 조반니는 자신이 상대하는 나머지 인물들의 음악적 스타일에 매번 자신을 맞추어 변신하는 카멜레온입니다.


‘기사장 귀신’에 의해 지옥으로 끌려들어가는 돈 조반니의 처절한 최후.

 

독일 연출가 페터 콘비츄니가 현대적으로 연출한 [돈 조반니]에서는 금빛 실내복 가운을 입고 맨발로 돌아다니는 돈 조반니와 항상 반듯한 정장이나 제복 차림으로 등장하는 그 밖의 인물들을 대비시켰습니다. 사회규범과 질서를 거부하고 ‘쾌락의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주인공과 어떻게든 그를 길들이려는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대립을 상징한 것이죠. 이 공연에서 돈 조반니는 지옥에 떨어지는 대신, 정신병원에 실려가 희극적인 방식으로 거세된 뒤 양복 정장 차림의 평범한 남자로 변신하는,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말 끔찍한 벌’을 받았습니다. 건전한 상식을 지닌 사회와 그 틀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개인. 어느 쪽이 더 폭력적인가를 판단하는 일은 관객의 몫입니다.


 

 
추천 음반과 영상물 (돈 조반니-레포렐로-돈나 엘비라-돈나 안나-돈 오타비오-체를리나 순)

[음반] 에버하르트 베히터, 주세페 타데이,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존 서덜랜드, 루이지 알바, 그라치엘라 슈티 등,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61년 녹음, EMI


[음반] 요하네스 바이써, 로렌초 레가초, 알렉산드라 펜다찬스카, 올가 파시츄니크, 케네스 타버, 임선혜 등, 르네 야콥스 지휘,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및 RIAS 캄머합창단, 2007년 녹음, 아르모니아 문디


[DVD] 로드니 길프리, 라즐로 폴가, 체칠리아 바르톨리, 이자벨 레이, 로베르토 사카, 릴리아나 니키테아누 등,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지휘,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위르겐 플림 연출, 2001년 실황, 아트하우스

      
[DVD] 토머스 햄프슨,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 멜라니 디너, 크리스티네 쉐퍼, 피오트르 베찰라, 이자벨 바이락다리안 등, 다니엘 하딩 지휘,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마틴 쿠셰이 연출, 200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Decca(한글자막)

 

관련링크 : 통합검색 결과 보기

 

 

 

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이미지 TOPIC / corbis

 

히스테리아, 피나

느끼기/review | 2012. 10. 4. 01:17
Posted by 그리고 가을

 

 

 

 

 

 

[next 플러스 ]

 

그을린 사랑

느끼기/review | 2012. 10. 1. 14:43
Posted by 그리고 가을

 

레바논 내전

 

1970-1990년, 20년 정도 지속낸 내전으로, 레바논 안에서 민족끼리 싸우기도 했지만, 다른 민족이 레바논 땅에 와서 싸운 기록도 있다. 비유를 하자면 우리나라가 남북전쟁을 했지만, 그 이후에 중국하고 일본이 우리나라에 와서 싸운것 이다.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고, 그런 슬픈 역사가 있는 땅이다.

레바논의 위치는 이스라엘 바로 위쪽

 

[내용중 수학과 연관된 부분]

 

출처: 트리플

 

 

'그을린 사랑'을 계기로 레바논 내전과 현재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영화 속 장면장면이 레바논의 실제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해, 복잡하기 짝이없는 레바논을 공부하기엔 더 없이 교재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감독은 레바논이란 특정 장소를 배경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이 기회에 레바논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것같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레바논 내전이 끝난지 20여년이나 됐는데도 그곳의 혼란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 2005년 시리아군 철수를 요구했던 라피크 하리리 전총리가 폭탄테러로 암살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는가 하면, 곧 이어 친시리아계 정부의 축출을 요구하는 그 유명한 '백향목 혁명'이 발생했고, 2006년 7월에는 이스라엘이 자국 군인을 납치해간 레바논 헤즈볼라를 응징하겠다면서 국경을 넘어 침공을 단행해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총선에서 남부 이슬람거주지역을 장악한 헤즈볼라당이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켜 친시리아정부는 물론 전세계를 깜짝놀라게 했고, 헤즈볼라와의 연정이 붕괴되면서 오랜시간 정정불안이 계속됐다가 지난 6월에야 겨우 헤즈볼라측이 추천한 친시리아계 온건파이자 성공한 기업인 출신인 나집 마카티 총리가 취임하면서 나라꼴이 조금은 안정을 되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2006년 붙잡아간 이스라엘 군인 샬리트가 아직도 레바논 모처에 억류돼있는 것(또는 사망했을 수도) 으로 알려져 있기때문에 언제든 이스라엘과의 전쟁 위협이 남아있습니다.

그럼 , 영화 속 장면을 통해 레바논 내전이 왜 일어났으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1. 가톨릭신자 어머니와 팔레스타인 난민 사이에 태어나 가톨릭 고아원에서 성장한 아부 타렉은 왜 이슬람민병대 저격수가 됐다가, 기독교민병대의 교도소 고문기술자가 됐을까요.

영화의 첫장면, 소년 아부 타렉이 삭발을 당하는 장면입니다.
아부 타렉이 종교를 넘나들면서 살인마가 된 데에는 레바논의 복잡한 종교 및 인종 구성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레바논의 종교,인종구성 표를 보겠습니다.

왼쪽으로는 지중해, 오른쪽으로는 시리아, 남쪽으로는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바논은 예로부터 인종과 종교가 복잡하기로 유명합니다. 지중해 건너 유럽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중동의 다른 국가들과 밀접하게 붙어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프랑스 식민시절에는 베이루트가 '중동의 파리'로 불릴만큼 세련되고 자유로운 문화교류지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오리엔탈리즘'의 작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자서전에 보면, 이스라엘 건국전 베이루트가 얼마나 서구화된 대도시였는지 잘 알 수있습니다.
레바논이 복잡하게 느껴지는 것은 같은 아랍족인데도 이슬람신도도 있고, 기독교 신도도 있어서 인종만으로 정확하게 구분을 지을 수가 없다는 점때문일겁니다. 인구의 90% 이상이 아랍인인데도 기독교 신자가 많고, 내전 당시 기독교 우파 팔랑헤당(카타엡당)민병대의 악행이 극에 달했던 것은 레바논만의 특수한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종파별 거주분포지형을 보겠습니다.(2009년 기준)


가장 인구가 많은 종교는 역시 이슬람에서 수니와 시아파입니다. 그다음 마론파는 5세기 시리아 수도자 마론에서 비롯된 기독교의 한 파벌로, 주로 시리아에 신도가 많습니다. 정확한 교리는 모르겠으나, 로마 가톨릭에서는 이단시하는 종교로 알고 있습니다. 내전의 핵심 당사자 중 하나이지요. 또다른 기독교파는  로마가톨릭입니다. 영화 속의 마르완 가족은 이슬람신자들이 많은 남부지역의 소수파인 가톨릭마을에 살고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드루이즈는 이슬람 시아파에서 갈려나온 종파로, 일신교를 숭상하고 이슬람과 달리 일부일처제 남녀평등관을 갖고 있습니다. 이밖에 시아파에서 갈라져 나온 알라위파, 이스마일파가 있고, 기독교계로는 그리스 정교파가 있습니다. 

종교가 이렇게 복잡하고, 갈등이 심하기때문에 레바논에서는 의회 의석도 종파별로 엄격하게 할당돼있습니다.
대체로 대통령은 기독교계인 마론파에서 나오고, 총리는 이슬람 수니,국회의장은 시아파 쪽에서 나오는 것같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르완의 아들 아부 타렉은 이슬람민병대가 남부지역을 장악해 가톨릭고아원을 접수하자,
이슬람군인들의 손에 의해 자라나면서 저격수로 키워집니다. 그랬다가 기독교민병대에 체포된 후에는 다시 고문기술자로 훈련을 받고 악명높은 교도소에 배치되는 것이지요(아마도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은 원래 가톨릭고아원 출신이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겠지요). 이 교도소는 내전때 이스라엘 군이 장악한 남부지역에 실존했던 교도소를 모델로 삼은 듯합니다. 이런 교도소는 한둘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수감자들은 영화 속 마르완처럼 재판도 받지 못한채 고문당하고 , 살해당하고, 강간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영화 속에서 '버스학살'을 저지르는 기독교 민병대는 누구인가. 


영화 속에서 마르완은 몇해전 고아원에 맡긴 아들을 찾기 위해 , 대학생활을 하던 대도시(아마도 베이루트)를 떠나 남부지역으로 향합니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부지역은 팔레스타인난민들이 대거 유입된 곳이며,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군(PLO)의 근거지였고, 내전때는 기독교계 민병대에 의해 끔찍한 학살을 당한 곳이며, 이스라엘군에 의해 오랜세월 점령당했던 비극의 땅입니다. 마르완은 목에 늘 걸고 다니는 나무 십자가를 풀어 가방에 감춘채 이슬람계 사람들로 가득찬 버스를 타고 남부땅을 가던 중, 기독교 민병대와 마주칩니다. 버스안에서 유일한 기독교신자인 마르완은 십자가를 꺼내 보여줄지말지를 고민합니다. 그러다 무차별 총격이 퍼부어지고 버스에 휘발류가 끼얹어져지는 순간, 결국엔 '나는 기독교 신자다'라고 외치고 살아나게 됩니다. 하지만 민병대가 던진 불길에 버스가 불타버리고, 어린 소녀까지 총격으로 사망하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합니다. 그가 기독교신자이면서도 반기독교파가 되고, 이슬람조직에 들어가 기독교계 정치인을 암살하게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사건입니다.

레바논 내전(1972~91년)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해선 학설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2차세계대전 이후 정정불안, 팔레스타인난민유입에 따른 종족, 종교적 갈등, PLO유입 등이 하나의 계기가 됐다는데는 의견이 일치됩니다. 
직접적으로 내전이 불붙게 된 것은 1975년 기독교민병대의 유명한 '버스 학살'이 도화선 역할을 했습니다. 앞서 75년 4월 13일 팔레스타인계로 추정되는 무장괴한들이 4명의 팔랑헤 조직원을 사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슬람계주민들이 타고 있던 버스 한대에 팔랑헤가 무차별 총격을 퍼부은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버스안에 타고있던 26명이 몰살했다고 합니다. 
유사한 집단학살로는, 내전중인 82년 9월 16~18일 수도 베이루트의 팔레스타인계 거주지역인 사브라와 샤틸라에서 기독교 민병대가 학살을 저지른 사건이 있습니다. 이 곳은 82년 6월 PLO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이른바 '갈릴리 평화작전'이란 이름으로 레바논 을 침공한 이스라엘군이 장악한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기독교민병대가 자기네 관할구역을 급습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집단 학살하는 것을 수수방관, 아니 사실상 허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 팔랑헤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목에건 십자가를 보십시오.


3. 영화 속 정치인 암살사건은 실제로 일어났나.

 1982년 내전중에 레바논에서는 대선이 치러집니다. 여기서 팔랑헤(카타엡당) 초대당수 피에르 게마엘의 아들이자 지도자인 바시르 게마엘이 당선됩니다. 종교는 당연히 마론파 기독교인지요. 이탈리아와 스페인 파시스트정당을 모델로 삼아 1936년 창설된 팔랑헤가 저지른 악행은 당시에도 국제사회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는데,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바시르 게마엘을 "레바논에 희망의 빛을 가져다주는 젊은 지도자"로 치켜세웠습니다. 중동에서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니, 미국으로선 어쩌면 당연히 편을 들만했겠지요. 그래도 '희망'이라니 너무했습니다.
그가 당선된 후 3주후 한 남성이 그를 겨냥한 폭탄테러를 감행합니다. 이름은 하비브 샤르투니.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지식인이었습니다. 영화 속 마르완처럼 그도 종교에 상관없이 ,진보적인 좌익사상에 경도됐던 것같습니다. 종교는 마론파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는 레바논의 갈등을 없애기 위해선 악의 상징인 팔랑헤 지도자 게마엘을 죽여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게마엘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위층에 폭탄을 장치했고 원격장치로 터트려 게마엘을 비롯한 20여명을 살해했습니다. 이후 곧 체포된 그는 8년간 악명높은 루미에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고, 90년 석방됐다고 합니다.

샤르투니의 실제 모습입니다.

4. 현재 레바논은 어떤 상황인가.

여전히 남부에서는 정당조직으로 변신한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강력합니다. 레바논은 지난 2005년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가 암살당한 사건이후 친시리아계 세력이 장악한 정치체제의 변화를 촉구하는 백향목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 혁명으로 75년이래 레바논 평화유지를 내세워 주둔해왔던 시리아군이 30여년만에 철군하는 대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2006년 이스라엘 군과 헤즈볼라 간의 전쟁으로 정부조직이 무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됐고,
2009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헤즈볼라당 출신 의원들이 각료로 임명되는 연합내각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총선에서는 친서방파 '3.8세력'이 승리하기는 했지만, 헤즈볼라를 포용하는 연합내각이 출범한 것이지요.
하지만 하리리 전총리 암살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하리리 죽음에 시리아와 이란의 사주를 받은 헤즈볼라가 개입됐다고 주장하면서 야권소속 장관 11명이 항의사표를 던지는 바람에 지난 1월 연정이 와해됐습니다. 장기간 정치혼란이 계속되다가 5개월 남짓 후인 지난 6월에야 헤즈볼라가 온건파 미카티를 총리로 내세우면서 겨우 정부 꼴이 갖춰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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