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음식은 어쩌다 맛이 갔나?
최근에 Tyler Cowen 이라는 사람이 쓴 An Economist Gets Lunch 라는 책을 읽고 있다. 미국의 음식문화와 산업 등에 대해서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쓴 글이다. 그런데 경제학자 관점 치고는 분석적이지는 않고, 비교적 자신의 체험이나 자기 자신만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쓰고 있다. 분석적이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논리적이라서 재미있게 읽고 있다.
이 책의 초반에 나오는 챕터가 How American Food Got Bad – 의역하자면 ‘미국의 음식은 어쩌다 맛탱이가 갔나?‘ 정도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미국의 음식이 이렇게 황폐화 된 이유로 다음의 세가지를 들고 있다.
1. 금주법
1920년대에 시행된 미국의 금주법이 미국의 음식문화가 이모냥 이꼴이 난 원인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금주법이 굉장히 크게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미국의 금주법은 1920년대에 시행된 ‘술을 못파는’ 법이다. 단순히 판매 뿐 아니라, 제조/운반/유통을 모두 금지했기 때문에 미국의 1920년대는 주당들에게는 한마디로 암흑기였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술을 못마시게 하다보니 사람들은 밀주/밀매를 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미국의 갱(gang)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시기가 바로 미국 갱들의 전성기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마도 우리가 익숙한 대부분의 미국 마피아 영화들은 이러한 금주법이 시행된 1920년대를 배경으로한 것들이 많지 않나 생각된다.
중요한 점은 금주법이 시행됨에 따라서 타격을 입은 것은 레스토랑들이었다는 것. 그 이전까지 매우 좋은 음식을 싼 가격에 팔면서 음식에 투자하는 만큼의 손해를 술 매상으로 보전하고 있던 많은 레스토랑들이 이시기에 문을 닫게 되었다. 게다가 이민으로 이루어진 미국 사회에서 프랑스나 독일계가 많은 비중을 차지했을 터인데, 그들에게 있어서 식탁위의 와인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밥상의 국과도 같은 존재이었으니, 당연히 이 시기에 많은 유럽계 이민족들이 만든 레스토랑들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미국의 갱들도 밀주/밀매에 편하도록 양이 적고 도수가 높은 보드카나 위스키 위주로 밀주/밀매를 전개하였기 때문에, 음식을 먹을때 가장 중요한 술이었던 와인은 심지어 밀주/밀매라는 불법의 혜택(?)도 못받게 되었다. 금주법이 해지된 이후에도 한참동안 미국내 와인산업이 불황을 겪었다고 한다.
아무튼 금주령은 1930년대에 해지되었지만, 그 후로도 대공황, 2차세계대전, 한국전쟁 등과 같은 우울한 나날을 보내야 했던 미국에서, 다시 한번 맛있는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에서 좋은 와인을 곁들여 먹는 것은 1960년대를 지나면서 캘리포니아, 뉴욕 등지에 새로운 음식 문화의 바람이 불면서였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 내용에 대해서는 최근에 Freakonomics Podcast에 ‘You eat what you are‘ 라는 제목의 episode가 올라와 있다. Freakonomics는 한국에서는 괴짜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서 출간되었던 것으로 아는데, 시카고 대학 경제학 교수인 Steven Levitt 이라는 사람이 Steve Dubner 라는 사람과 함께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며, 현재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podcast로도 방송하고 있다. 내가 가장 즐겨듣는 podcast 이며, 행동경제학의 내용을 주로 다룬다. 꼭 한번 들어보실 것을 강권함!
2. 이민 제한 정책과 미국내 유통의 발달
미국은 이민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그런데 1920-30년대를 지나고 대공황, 2차대전 등을 겪으면서 미국의 이민정책은 굉장히 보수적으로 변했다. 중국, 베트남, 타이, 인도 등 지금의 미국의 레스토랑 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아시안의 음식들은 대부분이 70년대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이민정책이 좀 더 완화되었더라면 1930년대부터 아시아의 영향을 받은 음식들이 좀 더 많이 들어왔으리라.
그렇게 초기 이민자들의 음식만으로 이 큰 나라가 굴러가면서 새롭게 생겨난 것이 바로 운송수단의 발달이었고, 전자레인지였다. 믹국인들은 새롭게 외부에서 들어오는 음식을 차단하는 대신에, 태평양 연안에서 대서양 연안까지 물류를 자유자재로 실어나를 수 있는 컨테이너 운반 차량이나 기차 등을 발달시켰다. 그리고 그 덕분에 미국 어디에서나 꽁꽁 얼린 식자재를 하루-이틀이면 받아서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울러 전자레인지의 가격하락으로 인한 보급으로 60년대의 미국에서는 냉동식품 붐이 엄청나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냉동식품이라는 것이 몸에 좋은 음식이 아니라는 것은 초딩들도 알건만, 당시의 미국인들의 인식에는 냉동식품이 간편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신이 내린 보물로 여겨진 모양이다. 한때는 많은 미국의 지역 레스토랑에서 전자레인지가 테이블마다 설치되어 있고, 사람들이 냉동식품을 그 레스토랑에서 사서 바로 테이블로 가져가 데워먹을 수 있는 곳이 성행했다고 한다. (90년대 후반 우리나라의 편의방이라는 것이 생각이 났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 챕터에서 저자는 자기 동네에 있는 평양순대집을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washington DC 쪽인것 같은데, 실제로 북한 출신 탈북자가 하는 순대집이 있는데, 너무 맛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집 주인 아줌마가 없었다면 자기의 식생활이 훨씬 불행했을 거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3. 아이들 중심의 가정 문화와 TV
미국 음식이 결정적으로 맛이 가게 된 이유로 저자는 아이들 중심의 문화를 꼽는다.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사람들처럼 아이들을 가족의 중심에 두고, 아이들 위주로 사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나도 아직 지금의 대한민국을 못봐서 이런 말을 하는거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60년대 – 70년대 베이비붐 세대를 겪으면서 많은 아이들을 둔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먹기 간편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위주로 엄마들이 쇼핑을 많이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전자레인지 보급과 냉동식품의 성장이 한몫을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무래도 Junk Food 가 많다. 이러한 특성을 가장 잘 포착한 업체의 대표적 사례로 저자는 맥도날드를 꼽고 있다. Kids 메뉴도 따로 만들고, 아이들을 공략한 TV 광고도 수십억을 들여서 계속 내보내다보니 아이들은 당연히 맥도날드를 가자고 부모들을 졸라댄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이렇게 자꾸 맥도날드에 자주 가다보니 부모들도 자꾸 거기서 먹게 되고, 나이가 먹고 성인이 된 아이들 역시 계속 맥도날드에 가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20세기 미국의 최고의 마케팅 사례로 뽑힐만 하다. 마찬가지 사례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캔디, 초콜렛 등을 서슴없이 주는 미국의 문화, 그렇게 먹고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탄산음료와 캔디바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의 음식문화는?
An Economist Gets Lunch라는 책은 미국의 음식문화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과 대안제시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보면서 한국의 음식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미국의 음식문화가 맛이 간 이유를 거꾸로 뒤집어 보면 우리나라의 음식을 잘 보전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첫번째는 맛있는 술과 함께 먹는 것이다. 한마디로 술 문화가 제대로 되어야 음식 문화도 제대로 될 수 있다는 것. 원래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반주’문화가 있어서 음식을 먹으면서 한두잔 가볍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술문화가 엉뚱한 방향으로만 자꾸 발전하고, ‘반주’ 또한 대부분 맥주나 소주로 이뤄져 있어서 나는 좀 불만이 많다. 좀 더 식감을 돋우는 맛스러운 술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와인도 물론 좋은 술이지만, 전통주 중에서도 좋은 술들이 많아서 이런 전통주들이 좀 더 계발되었으면 한다. 특히나 자도주법과 같은 말도 안되는 법과 일제시대와 군사정부 시절에 사라진 지방의 많은 전통주들이 복원되어서 반주로 좀 더 육성되면 좋겠다. 폭탄주 문화가 빨리 사라졌으면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항상 음식점을 하시는 분들은 음식을 통해서는 많이 못 벌고 술로 번다고 하시는데, 우리나라에서 이 발란스를 찾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항상 술집은 술집, 밥집은 밥집으로 이분법적으로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것 같기 때문이다. 고깃집에서 술도 먹고 밥도 먹는다고 하지만, 구워진 고기가 다 떨어질 때 즈음이면 갑자기 술판으로 변해 버려서, 술과 밥을 한번에 하는 의미가 퇴색한다. 그래서 더욱 반주 문화의 부활과 술과 식사가 함께 어울어지는 발랜스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두번째는 다양한 음식문화를 육성함과 동시에 로컬 식재료를 육성하는 정책이다. 우리나라처럼 배타적인 문화도 드물지만, 이제는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중국, 심지어는 북한 등에서 이주민들이 꽤나 많이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어려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을 통해서 자신들의 음식문화를 소개하도록 하는 것도 우리의 음식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좋은 음식은 로컬음식이라는 생각을 버려서는 안된다. 즉, 우리나라는 국산 식재료가 가장 좋다는 것. 우리 정부에서 얼마나 국산 농산물의 가격경쟁력이나 유통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자꾸만 local food 쪽으로 기울어져 간다면, 점점 더 공급도 늘어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음식이 맛이 간 이유로 들었던 아이들 중심의 음식문화를 우리나라에서는 잘 방어해야 하겠다. 아이들은 단 음식, 튀긴 음식, 자극적인 음식을 기본적으로 좋아한다. 이런 음식들을 우리의 철통같은 어머니들이 잘 지켜내고 있지만, 문제는 TV 미디어이다. 아이들에게 파고드는 미디어의 노출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TV 광고, 특히 음식광고에 대해서 너무 높은 당과 너무 높은 지방을 함유한 음식들에 대해서 철저하게 규제가 이뤄졌으면 한다.
나가며… : 나의 건강론
나는 건강에 관심이 많다. 음식, 운동, 수면(휴식), 명상 등이 나의 주된 관심 영역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 네가지가 건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4대 기둥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 가장 기본은 수면(휴식)인데,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면(휴식)에 대한 중요성이 점차로 줄어드는 느낌이다. 사람들의 수면시간도 OECD 최저이고, 야근에 술자리가 많아서 그런지 다들 늦게 잔다. 게다가 재미있는 TV 프로그램도 11시 부터 시작이니, 이건 잠을 도대체 몇시에 자라는 것인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만 들어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면과 휴식을 얼마나 홀대하는지 알 수 있다. ‘졸려’ 라고 말하면 ‘커피마셔’ 라고 한다. 졸리면 자야지!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음식인데, 음식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신뢰이다.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음식인가? 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 생각은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더 확고해졌다. 중국도 미국만큼이나 땅덩이가 넓기에 음식의 유통이 쉽지 않다. 음식이 장거리를 여행하면 질이 좋지 못하다. 그것은 FACT . 따라서 되도록이면 local 을 먹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Brand 즉, 내가 알고 믿을만한 사람이 만든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회사의 브랜드일 수도 있고, 요즘 유럽에서 유행하는 Farmer’s Product 즉, 어느 농장에서 누구에게 길러진지 알고 먹는 제품일 수도 있다. 그 다음에 굳이 꼽으라면 유기농이나 무농약/ 무항생제 제품 같은 것들.
(다음으로 운동과 명상에 대한 내용은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더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내가 이렇게 건강에 대해서 나 나름대로 이론을 만들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점은 건강에 대해서 신경쓰는 것이 굉장히 스트레스받고 귀찮은 일이 아니라, 재미와 연관이 많다는 점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아무래도 ‘음식’ 일 것이다. 최근에는 식도락을 쫓는 모임이 여기저기에서 생겨나고 레스토랑 별점 사이트나 미슐랭, Zagat 같은 책들이 엄청 팔린다. 모두 음식이 건강+재미라는 요소를 모두 갖추었기 때문이리라…
미국에서 살면서 음식의 질에 대해서는 의심이 드는 순간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한가지 좋은 점은 그 다양성이다. 미국이라는 사회 내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음식의 스펙트럼. 그리고 그 음식들이 서로의 좋은 점들을 참조하기도 하고, 베끼기도 하는 점은 참 부럽다. 우리나라 음식에도 이런 다양성이 더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