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편견에 가득찬 한국 식문화 이야기

먹을것/기사 | 2012. 10. 2. 21:51
Posted by 그리고 가을

지극히 편견에 가득찬 한국 식문화 이야기

우리나라의 식문화, 그 중에서도 특히 한식이 왜 정체되어있는지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었다. 수긍할만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보단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들이 많았는데, 특히 가관이었던 것은 그 놈의 '고급화'에 대해 말하던 높으신 분들이었다. 캐비어만 올리면 얼마든지 비싸게 받고 세계화(우리나라 안도 엉망인데 무슨 세계화를 논하나?)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말을 한 인간도 있던 것 같은데, 어쨋건 문제는 그런 곳에 있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론, 결국 작금의 문제는 우리나라에 미식문화가 지극히 허약하단 것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요리사가 음식을 열심히 만들면 뭐하나? 먹는 사람이 그 차이를 모른다면 무턱대고 노력해봤자 가게가 더 빨리 망하게 될 뿐이다. 그러면 미식이란게 뭐냐하면, 별거 없다. 특별히 비싼 것, 맛있는 것 찾아먹는 것도 미식이지만, 그냥 평소 먹는 음식 중 뭐가 맛있는지, 왜 맛있는질 생각하는 것도 미식이다.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하는 미각과 후각, 촉각은 분명 굉장히 직관적인 감각이다. 하지만 이 또한 경험과 주관을 쌓을수록 나름 음식에 대해 판단할 기준을 세우고, 그 차이를 인지할 수 있게 된다. 그게 아니면 최소한 자기가 먹고 있는 음식이 어떤 부분이 맘에 안 드는지라도 생각해보면 된다.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정도도 생각하지 않고 먹는다면, 하루 종일 장기나 바둑으로 소일해도 실력은 제자리인 노인정 어르신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맛에 대해 굉장히 단편적인 평가 밖엔 하지 못한다(물론 나도 그런 비판을 면하긴 힘들다). 윙스푼을 보자. 절대 다수의 평가는 '맛있다', '맛없다'로 나뉜다. 조금 평이 길다 싶으면 십중팔구는 자기가 받은 푸대접에 대해 하소연하는 내용이고, 음식에 대한 자세한 평가를 내린 사람은 정말 100명 중 4~5명이 될까 말까 한 정도다. 단문 위주로 인터페이스를 짠 윙스푼의 특성 탓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블로그라고 해서 뭐가 그리 다르던가? 사진이 대량으로 첨부되기 마련이란 것을 제외하면 많은 블로그들도 그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 한다. 나름 음식에 대해 평을 했다 해도, '담백하다', '조미료 맛이 나지 않는다'와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의 비중이 너무 높다. 물론 '담(淡)'으로 상징되는 동양의 정서는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문제는 실제로 담백하지도 않은 음식을 두고 단순히 '맛있다'를 돌려말하기 위해서, 자신의 미각을 과시하기 위해 그 단어를 사용한다는데 있다. 기본적인 맛들, 그러니까 짠맛, 신맛, 단맛, 쓴맛, 감칠맛이나 음식의 향 등에 기초해 음식을 평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우리나라와 대조되는 대상으로 일본을 제시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조작 파문으로 신뢰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대표적인 식당 리뷰 사이트인 타베로그에 올라온 평가들을 보면 굉장히 분석적인 리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라면에 대한 평가만 해도 면, 국물, 고명을 별개의 항목으로 나눠서 재료의 맛과 질감을, 향을 논하면서 꼬치꼬치 따지는 것은 기본이고, 같은 음식점을 몇 차례고 다시 방문하면서 요리의 상태나 서비스 수준을 점검하는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 식의 리뷰가 음식점에 따라선 수백개씩 쌓여있다. 일본 음식이 지금과 같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덴 이런 미식문화의 배경이 분명히 큰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식문화가 이렇게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감탄사를 늘어놓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첫째이자 가장 큰 요인은 우리나라에 미식이나 외식이란 개념이 생긴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단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유교문화가 뿌리내린 조선에선 최상층인 양반들조차도 음식을 즐기는 것은 식탐으로 여기고 배척하는 것이 보통이었다(물론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 이들도 많긴 했다). 조금 특이한 식재료를 쓴다 싶으면 어김없이 붙어있는 음식의 효능에 대한 과장된 이야기는 정작 음식의 맛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는 어두운 단면을 비추는 거울인데, 그런 전통은 하루이틀된 것이 아니다. 미식이란게 있다 해도, 허구헌날 우리나라엔 있지도 않던 황산과 태산을 글월로 읊던 양반들은 음식 역시도 그런 식으로 즐겼다. 우심적과 같은 음식은 정작 소를 잡는 것이 범죄이던 조선에선 먹기도 힘든 음식이었음에도 왕희지가 우심적을 먹었다는 일화 때문에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가끔 불고기의 원형이라 이야기되는 설야멱 역시 송나라의 태조와 연관된 음식으로서 유명세를 탔다. 여름이 제철인 농어와 순채를 두고 장한의 시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가을바람 불면 생각이 난다고 타령했던 모습은 개그 아닌 개그다.

좀 더 가까운 시대로 눈을 돌려보면, 상업이 발전하지 못해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생겨난지 오래되지 않았단 점도 고려해야 한다. 얼마전 전국의 오래된 식당들을 조사해 책을 펴낸 것을 보았는데, 80년 이상 된 식당은 10개에 불과했다(그나마도 신뢰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수 있다). 그러면 식당은 그렇다치고 음식들은 오래 되었나? 우리가 먹는 요리도 20세기에 생겨났거나(배추김치가 그렇다), 이전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변한 것들이 많다. '한국인의 밥상' 같은 다큐멘터리엔 다양한 전통 요리과 식재료들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그런 음식을 만들고 먹는 사람들은 촌에 거주하는 노인이 대부분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음식들이 20년, 30년 뒤에 얼마나 남아있을까? 프랑스의 경우 20세기 초에 지방의 향토 음식이 자동차 여행 붐 속에서 조명을 받으면서 그 나라의 식문화를 풍성하게 하는데 기여했었다. 그들이 자랑하는 미슐랭 가이드가 자동차 타이어 교체시 나눠주는 무료 가이드북으로 시작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하지만 철저하게 서울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굴러가는 우리나라에선 서울 사람들의 입맛에 지방이 따라가면서 되려 다양성이 압살당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여간, 오래된 것이라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전통으로 다져진 기초가 있어야 새로운 것도 제대로 쌓일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일단 그 점에서 우리나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둘째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뒤에도 제대로 음식을 즐길만한 사회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단 점을 들고 싶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밥을 먹는다고 해보자. 식사를 즐기는 광경을 떠올릴 수 있는가? 하다못해 여럿이 중국집에 갔을 때 혼자 잡채밥을 시켜 먹으려 해도 짜장이나 짬뽕으로 메뉴를 통일시키라는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런 환경에서 개인의 기호가 존중받을 공간은 없다. 아니, 중국집에 직접 갈 수 있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회사나 학교 바로 앞에도 널린게 식당임에도 그곳까지 걸어가는 시간,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쓰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해 식사 시간 15분 전에 배달 음식을 주문한다. 떡진 냉면, 식어버린 볶음밥을 탁자에 신문지 깔고 먹는 나라의 1인당 소득이 2만달러를 넘겼다고 하면 과연 몇 사람이나 믿겠는가? 그런 세상에서 음식을 즐긴다는 것은 사치이고, 음식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은 까탈스러운 사람, 벌받을 사람 정도로 치부된다. 우리나라에 유독 맛집 블로그들이 많고, 그 블로그들 대다수가 숟가락에 음식을 떠놓은 모습까지 일일이 보여줄 정도로 사진 위주로 구성되는 이유는 자신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을 가상으로나마 충족하고자 하는 욕망이 사람들에게 잠재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볼 정도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식당들은 요리에 힘을 쏟는 대신 획일화되거나, 의식을 수행하는 공간이 되기 마련이다. 특히 한식의 경우 흔히들 말하는 밥집을 제외하고 어떤 한식당들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한정식? 한정식집에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 가는 사람을 난 거의 보지 못 했다. 상견례니 가족모임이니 해서 뭔가 격식있는 자리를 가질 때 이용할 뿐이다(전라도에 갔을 때 관광 차원에서 가는 사람들은 있겠다). 나오는 음식들은 화석화 된지 오래다. 가족들 외식이나 직장 회식 때 주로 이용하는 고깃집은 어떤가? 숯불이나 불판에 구워먹는 고기는 물론 맛있지만, 고깃집의 가장 중요한 음식인 고기는 정작 조리란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비싼 고깃집은 그저 고기가 비싼 곳일 뿐, 그 가격에 걸맞는 다른 음식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되기 어렵다. 고깃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식은 찌개와 냉면이지만, '고깃집 냉면'이란 말은 엉터리 냉면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될 정도인 것을 생각해보자. 다른 외국 음식도 많은 경우엔 조금 돈이 더 들어가는 데이트 코스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 한다. 많은 외국 음식점들이 처음엔 반짝 인기를 누리다가 금방 파리 날리는 이유, 음식보단 인테리어에 더 신경을 쓰는 이유가 거기 있다. 같은 식당에 두번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니, '맛집'은 1회용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결국 별다른 탈출구 같은 것은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세월이 지나면 문화가 축적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하긴 하고 실제로 지난 10년 사이 많은 부분이 나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부분, 특히 일상적으로 먹는 식사의 질과 다양성이나 한국식 중국 요리 등은 되려 퇴보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점들을 제하고도,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나 노동 착취와 무한 경쟁에서 기인하는 개개인의 빡빡한 삶은 바꾸려 한다 해도 쉽게 바뀌지 않을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삶 속에서라도 조금이나마 더 식사를 즐기기 위해 신경쓰는 것 정도 밖엔 없다. '한끼 때운다'는 표현이 당연한 듯 사용되는 현실에선 그것조차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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