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좀 안다는 당신, '저렴이'가 왜 어때서요?
[레몬트리]
화장품 좀 안다는 당신, '저렴이'가 왜 어때서요?
당신이 30%나 50%란 글자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쇼퍼홀릭이라면, 세일을 알리는 포스터에 마법처럼 이끌려 중저가 뷰티 로드숍으로 빨려들어간 경험이 있을 것이다. '10대나 쓰는 화장품' 또는 '싼 게 비지떡'이라고? 당장 이번 주말 몇 군데 로드숍에 들러보자. 새로운 세상이 열릴지니.
저렴이
[명사] 발색 등의 품질이 럭셔리 화장품 못지않지만 가격은 싼 로드숍 브랜드 제품을 의미하는 말. 대개 '겔랑 구슬 파우더 저렴이' 또는 '디올 섀도 저렴이' 같이 럭셔리 베스트셀러 제품명과 함께 쓰인다.
솔직히 말하겠다. 에디터 역시 중저가 뷰티 브랜드에 대한 편견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로드숍 브랜드에서 출시한 제품은 무조건 뒷면부터 보는 것이 습관이었을 정도. 코스맥스, 한국콜마처럼 유명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사에서 만든 거라면 품질을 믿었지만, 그외 제품은 좀 꺼림칙해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졌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형 소비 대신, 소비 규모는 줄이고 만족도는 높이는 '가치 소비'가 트렌드로 떠오른 요즘이 아니던가. 게다가 더페이스샵, 미샤, 에뛰드하우스, 이니스프리, 토니모리 등의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숍의 국내 시장 규모가 전체 화장품 시장의 28%를 차지한단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화점 파우더룸에서 슬쩍 곁눈질해보면 거반 겔랑이나 샤넬 콤팩트를 자랑스레 들고 화장을 고쳤지만, 요즘 여자들은 에디터도 생전 처음 보는 수십 가지 다양한 브랜드의 콤팩트를 꺼내든다. 물론 로드숍 브랜드의 품질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것도 이유지만, 일부 수입 화장품의 높고 높은 가격에 배신감을 느끼고 뒤돌아선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도 한몫한다.
얼마 전 뉴스에선 아예 적나라하게 까발렸으니, 에디터 역시 이 기사를 읽고 나자 "브라우니, 물어!"라고 외치고 싶어졌다. 우리나라 화장품값, 특히 미국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의 가격을 고발했는데 A 브랜드의 립스틱은 우리나라 백화점에선 2만7천원이지만 미국에선 1만7천원이면 살 수 있고, B 브랜드의 아이크림은 우리나라에서 9만5천원인데 미국에선 5만8천원 정도라니 기가 차고 코가 막힐 노릇 아닌가.
뷰티 마니아들, 저렴이를 발굴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로드숍 브랜드를 사랑하게 된 원인을 저렴한 가격에서만 찾는다면 뭔가 허전하고 아쉽다. 가격이 싸다고 무조건 사는 게 아니란 말씀. 백화점 가서 화장품 쇼핑할 경제적 여력이 충분한 이들이 오히려 '나는 뷰티 마니아!'임을 선포하기 위해 럭셔리 화장품의 '저렴이'를 뒤지고 뒤져 기어코 찾아낸다. 블로그에 발색 샷을 올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도 한다. 어느 순간 '저렴이'를 잘 골라 사 쓰는 사람들이 뷰티 엑스퍼트로 등극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
화장품 쇼핑 외에는 취미가 전무한 에디터 역시 뷰티 로드숍을 그냥 못 지나친다. 몇 달 전 이니스프리에서 커다란 쇼핑 바구니에 갖고 싶은 화장품을 20여 가지나 담고도 10만원이 넘지 않았던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드숍에 막상 들어가보면 스킨케어, 바디케어, 메이크업, 네일까지 수백 종의 제품이 진열된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마련. 일단 옥석을 가리고 싶다면 뷰티 커뮤니티에 가입하길 권한다. 화장품 회사에서 지원을 받아 리뷰를 올리는 블로거들과는 달리, 다음 카페의 화장발(cafe.daum.net/makingup)같이 상업성이 덜한 뷰티 커뮤니티에는 정확한 리뷰가 올라온다.
저렴이 화장품의 재발견!
재미있는 현상은 이런 곳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지적 능력을 상승시키는 '집단 지성'이 작용한다는 것. 'OO 브랜드 섀도는 컬러 발색이 압권이에요'라는 한사람의 목소리는 약하지만, 차례차례로 이를 검증해보고 손등 발색 샷과 메이크업 인증샷으로 이를 증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이것은 정설로 굳어지고 나중에는 바이블로 등극한다.
어쨌거나 폭풍 검색을 거듭하다 보면 로드숍의 베스트셀러가 무엇인지 윤곽이 잡힌다. 이 글을 쓰고 며칠 후 20~50% 세일을 하는 아리따움을 타깃으로 삼은 에디터도 꼭 사야 할 리스트를 이미 만들어두었으니, 우리나라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블링블링한 '모디 네일즈'와 요즘 각광받는 음영 메이크업 필수 아이템이라는 모노톤 섀도 '얼스'를 사야겠다 마음먹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홀대받던 저렴이를 재발견하게 된 것은 외국 관광객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서서히 기지개를 켠 뷰티 한류는 올해 들어 활짝 꽃핀 느낌인데, 이 생생한 현장을 목격하고 싶으면 명동 유네스코 회관부터 밀리오레에 이르는 대로를 잠깐 걸어보면 된다. 한 가지 팁이라면, 명동의 뷰티 로드숍은 외국인 우대 지역이니 웬만하면 가지 말라는 것이다.
에디터 역시 손등에 아이섀도 발색 테스트를 하고 있던 중, 일본어로 상냥하게 말을 거는 점원에게 한국어로 답했더니 갑자기 눈길이 쌩해지던 경험을 했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다 합해서 2만원 남짓 계산한 에디터와 달리, 앞쪽에 있던 중국 관광객은 A4 용지 몇 페이지에 걸쳐 잔뜩 출력해온 화장품 목록을 들이밀고 박스째 쓸어 담고선 50만원 가까이 카드로 결제하는 게 아닌가.
어쨌거나 간장처럼 짜게 소비하지만 실속은 챙기는 간장녀가 우대받는 요즘이니 로드숍 브랜드의 승승장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대부분의 로드숍 브랜드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브랜드 데이를 정해 20~30% 세일을 하는데,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로 등록하거나 홈페이지 회원으로 가입하면 세일 정보를 득달같이 문자로 전해준다. 지금 이 원고를 쓰는 에디터 역시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로드숍 세일 문자 때문에 지름신이 자꾸만 강림하는 것을 꾹꾹 누르는 중이다.
Editor's Guide
살까 말까?
처음 로드숍 브랜드에 도전해본다면 아이섀도, 립글로스 같은 포인트 색조 제품과 네일 컬러를 먼저 시도하자. 물론 '분노의 검색질'을 통해 어떤 제품이 네티즌의 인증을 거친 베스트셀러인지 미리 찾아봐야 방황하지 않는다.
1
스킨푸드 골드 캐비어 토너
'금가루 토너'란 애칭으로 특히 중국 관광객이 선호한다고. 145㎖1만9천원
2
미샤 타임 레볼루션 에센스
출시 3주 만에 3만 개가 팔린 부스터 에센스. 150㎖4만2천원.
3
에뛰드하우스 룩앳 마이아이즈 카페라떼
국민 섀도 중 하나. 2g3천5백원.
4
아리따움 모노아이즈 드레스코드
메이크업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제품. 2.5g5천원.
5
이니스프리 미네랄 로즈 마블링 브라이터
크리스마스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출시되었지만 출시 요청이 쇄도해 고정 멤버가 된 제품. 6g1만원
6
이니스프리 화산송이 모공 마스크
품절 사태가 자주 일어나 홈페이지에 사과문까지 싣기도. 100㎖1만2천원
7
보브 올리고 펜 아이라이너
보브 제품 중 일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사가는 아이템. 0.6g1만5천원대.
8
토니모리 인텐스 케어 라이브 스네일 크림
태국 총리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매장에 직접 들러 구입해 유명해졌다. 45㎖3만6천원.
9
미샤 M 퍼펙트 커버 비비 크림 SPF42 PA+++
일명 '빨간 비비'. 한때 동화면세점에서 미샤가 1위를 한 원인이 되었던 제품. 50㎖1만5천8백원.
10
아리따움 모디 네일즈
요즘 화장품 커뮤니티는 이 네일 시리즈의 발색 샷으로 '도배'되어 있다. 10g3천5백원.
11
스킨푸드 블랙슈가 마스크 워시 오프
8년 동안 3백만 통이 팔려나갔다. 100g7천7백원.
기획_김유리 사진_박충열
레몬트리 2012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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